게르마니쿠스 개선문 [ Arch of Germanicus ]

별 볼일 없는 것이 특별하다

진시황제는 오래 살기 위해 엄청 애를 썼습니다.
불로초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여러 나라에 보냈고
명의들을 시켜 온갖 약을 만들 것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2000여년이 지난 지금
효과적인 장수 비결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진시황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조금씩 먹기, 많이 걷기, 충분히 잠자기,
남들과 많이 얘기하고 많이 웃기 등등
아주 작은 일에 장수비법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행복이나 성공 등을 위해 애써 찾는 특별한 방법을
어쩌면 우리는 진작부터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_지식in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게르마니쿠스 개선문

대륙: 유럽
위치 : 프랑스>생트
저자 : 앤드루 스미스
세기의 로마 개선문

생트는 로마 지배 시절부터 프랑스 남서부에서 중요한 도시였으며, 게르마니쿠스 개선문은 생트의 여러 로마 유적 중 하나에 불과하다. 메디오라눔 산토룸이라는 로마 도시는 기원전 30년경 보르도와 리옹(당시 갈리아의 수도였다)을 잇는 주요 도로가 샤랑트 강과 만나는 지점에 세워졌다.

이 개선문은 기원전 20년경 건축되었으며, 이름은 게르마니쿠스 개선문이지만 실제로는 로마를 지배하는 3인에게 바치는 문이었다. 3인은 상대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로마의 두 번째 황제 티베리우스, 그의 친아들 드루수스, 그리고 양자 게르마니쿠스로, 이 별명은 게르만 땅에서 여러 차례의 전투를 이끌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다른 로마 개선문에 비해 이 유적은 구조가 단순한 편인데, 아마 단순히 기념 건축물이라기보다 그 실제적인 목적이 다리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 도시에는 공공 목욕탕과 15000명의 관중이 앉을 수 있으며 아직도 근처 언덕에 그 유적이 남아 있는 넓은 원형 경기장이 세워졌다. 이러한 기념물 덕분에 이 도시는 오랫동안 프랑스를 찾아오는 이들이 꼭 보아야 할 역사적인 장소로 여겨져 왔다. 영국의 작가이자 다재다능한 천재 토머스 브라운 경은 1662년 다음과 같이 썼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로마 시대 웅장함의 흔적을 볼 수 있다 … 무엇보다도, 전부 열네 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는, 다리 위에 세워진 두 개의 당당하고 웅장한 아치형 문이 그렇다." 

불행히도 이 다리는 급속하게 성장해 가는 도시에 더 어울리는 큰 다리를 놓기 위해 19세기에 헐려 버렸다. 그러나 게르마니쿠스 개선문의 중요성은 인정을 받아, 생트 시의 공무원들은 주의 깊게 이를 분해하여 강 반대편에 다시 세웠다. 오늘날 이 개선문은 프랑스 역사에 미쳤던 로마의 영향력을 회상시키는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게르마니쿠스 개선문

게르마니쿠스 개선문 [ Arch of Germanicus ]

게르마니쿠스 개선문

게르마니쿠스 개선문 [ Arch of Germanicus ]

게르마니쿠스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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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쿠스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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